막혀 있던 하늘길이 조금씩 다시 열리기 시작하던 2022년 여름, 나는 엄마와 처음 해외여행을 떠났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였다. 설렘도 컸지만 걱정도 있었다. 특히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영어였다. 출발 전부터 여행에서 필요한 표현들을 찾아봤다. 음식 주문하는 법, 길을 묻는 법, 간단한 인사까지. 휴대폰 메모장에는 상황별 표현들이 가득했다.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에서 필요한 영어는 생각보다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카운터 앞에 서기 전 머릿속으로 몇 번씩 문장을 연습하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만 참으면 내 영어도 그럭저럭 통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아마 이스탄불 공항 안 에스컬레이터였던 것 같다.
한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친절한 표정이었다. 분명 무언가를 물어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한 단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Sorry?" 라고 되묻는 것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눈만 동그랗게 뜨고, 어색하게 웃으며 "어… " 하고 있었다.
아마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다.
여행 영어는 어떻게든 해냈는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영어를 하고 있던게 아니라, 외운 문장들을 꺼내고 있었구나. 엄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남았다.
영어가 필수 교육인 나라에서 수년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막상 실제 상황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토익과 토플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나는 영어가 크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5초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나도 영어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외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곧장 아이엘츠를 준비했고, 끝내 호주 멜버른으로 교환학생을 떠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로 주문하는 것조차 긴장했던 내가, 어느 순간 영어로 수업을 듣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욕심으로 이어졌다. 일 년 뒤에는 싱가포르의 디자인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일하는 경험까지 하게 됐다.
2022년 해외 여행 전의 나는 해외여행은 가고 싶지만, 해외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해외에서 출근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일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시작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5초였다. 그날의 창피함은 오래 남았고, 결국 나를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