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문구 브랜드 창업 이야기 1 - 그냥 해보자!
Jun 12, 2026
01 문구 브랜드 창업 이야기 1
- 그냥 해보자!
Jun 12, 2026
팬데믹이 시작되던 스무살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 주변에는 이상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가시방석이 돋는 사람. 어느 날 그 친구가 연락을 했다.
"얘들아 우리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보자."
그렇게 다섯 명이 모였다.
친구는 자기 기준으로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할 것 같은 사람들'을 골랐다고 했다. 그 안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꽤 기뻤다.
그렇게 우리의 모임이 시작됐다. 이름은 '해보기'.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 그냥 뭐든 해보자는 뜻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노트를 펼쳐놓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코딩 열풍이 한창이었다. 앱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문제는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거 노트, 아니 다이어리 만들어볼까?"
"좋은데. 포토샵 할 줄 알잖아."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그 말이 우리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막상 다이어리를 만들기로 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섯 명의 취향이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귀여운 디자인을 좋아했고, 누군가는 최대한 단순한 구성을 원했다. 기능적인 페이지를 많이 넣자는 의견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구성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권의 다이어리에 그걸 모두 담는 건 어려웠다.
"차라리 다이어리를 비워두면 어때? 쓰는 사람이 자기 취향대로 꾸밀 수 있게."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우리 브랜드가 가장 처음 갖게 된 방향이었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것.
다음 문제는 돈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다이어리를 제작할 돈은 없었다. 우리가 찾은 방법은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이었다. 목업 이미지를 만들고, 소개 페이지를 쓰고, 다른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찾아보며 흉내 냈다. 심사가 통과됐다는 메일 하나에도 다 같이 들떠 있었다.
후원이 시작됐다. 우리의 후원자는 대부분 가족과 친구였다. '그럼 그렇지…'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후원 금액이 갑자기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트위터에 누군가 우리 다이어리를 추천한 글이 올라왔고, 그 글이 생각보다 많은 좋아요와 리그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목표 금액을 넘겼다. 정말 다이어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운도 실력이란 말을 그때 처음 믿게 됐다.
이제는 진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아무도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제본방식도 몰랐고, 종이도 몰랐고, 인쇄 파일을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충무로 인쇄골목을 찾았다. 인쇄소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다른 인쇄소에 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바쁜 사장님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썩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모르면 그냥 웃으면서 물어봤다.
며칠 뒤 샘플이 나왔다. 모니터 안에만 있던 다이어리가 종이가 되어 내 손에 올라왔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가 만든 것이 화면을 벗어나 실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의 감각은 아직도 선명하다.
첫 번째 펀딩은 무사히 끝났다. 배송도 모두 마쳤고, 정산도 끝났다. 적은 돈이었지만 처음으로 우리가 만든 것으로 돈이 들어왔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때 나는 정말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이거 계속 해볼까?"




팬데믹이 시작되던 스무살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 주변에는 이상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가시방석이 돋는 사람. 어느 날 그 친구가 연락을 했다.
"얘들아 우리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보자."
그렇게 다섯 명이 모였다.
친구는 자기 기준으로 '끝까지 책임감 있게 할 것 같은 사람들'을 골랐다고 했다. 그 안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꽤 기뻤다.
그렇게 우리의 모임이 시작됐다. 이름은 '해보기'.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 그냥 뭐든 해보자는 뜻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노트를 펼쳐놓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코딩 열풍이 한창이었다. 앱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문제는 아무도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거 노트, 아니 다이어리 만들어볼까?"
"좋은데. 포토샵 할 줄 알잖아."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그 말이 우리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막상 다이어리를 만들기로 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섯 명의 취향이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귀여운 디자인을 좋아했고, 누군가는 최대한 단순한 구성을 원했다. 기능적인 페이지를 많이 넣자는 의견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구성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권의 다이어리에 그걸 모두 담는 건 어려웠다.
"차라리 다이어리를 비워두면 어때? 쓰는 사람이 자기 취향대로 꾸밀 수 있게."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우리 브랜드가 가장 처음 갖게 된 방향이었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것.
다음 문제는 돈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다이어리를 제작할 돈은 없었다. 우리가 찾은 방법은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이었다. 목업 이미지를 만들고, 소개 페이지를 쓰고, 다른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찾아보며 흉내 냈다. 심사가 통과됐다는 메일 하나에도 다 같이 들떠 있었다.
후원이 시작됐다. 우리의 후원자는 대부분 가족과 친구였다. '그럼 그렇지…'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후원 금액이 갑자기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트위터에 누군가 우리 다이어리를 추천한 글이 올라왔고, 그 글이 생각보다 많은 좋아요와 리그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목표 금액을 넘겼다. 정말 다이어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운도 실력이란 말을 그때 처음 믿게 됐다.
이제는 진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아무도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이다. 제본방식도 몰랐고, 종이도 몰랐고, 인쇄 파일을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충무로 인쇄골목을 찾았다. 인쇄소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또 다른 인쇄소에 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 바쁜 사장님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썩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모르면 그냥 웃으면서 물어봤다.
며칠 뒤 샘플이 나왔다. 모니터 안에만 있던 다이어리가 종이가 되어 내 손에 올라왔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가 만든 것이 화면을 벗어나 실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의 감각은 아직도 선명하다.
첫 번째 펀딩은 무사히 끝났다. 배송도 모두 마쳤고, 정산도 끝났다. 적은 돈이었지만 처음으로 우리가 만든 것으로 돈이 들어왔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때 나는 정말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이거 계속 해볼까?"


